희망의 불씨를 피우고 떠나간 장영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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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안 보이는 항암 치료에 몸도 마음도 지쳐가지만, 독자에게 한 내 말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희망을 연구하고 실험하리라. 이 추운 겨울이 지나고 내년 봄 연구년이 끝날 무렵에 멋진 연구 결과를 발표 할 수 있다면, 난 지금 세상에서 가장 보람된 연구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9일 타계한 장영희교수는 칼럼을 통해 고난에 굴복하지 않는 도전 정신과 긍정적 삶의 자세를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준 작아였다. 서강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95년부터 서강대 교수로 재직해 왔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가 불편했던 고인은 2001년 유방암에 걸렸으나 두번의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은 끝에 회복됐다. 그러나 2004년 9월 척추로 암이 옮아왔다.
"신(神)은 인간의 계획을 싫어하시는 모양이다. 올 가을 나는 계획이 참 많았다.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고 칼럼을 쓰며, 오뚝이처럼 병마를 이기고 이듬해 다시 강단에 섰다. 그러나 지난해 암이 간까지 전이되면서 학교를 휴직하고 최근까지 치료를 받아왔다.
희망의 메세지를 전하던 장교수는 9일 눈을 감았다. 장교수는 세차례에 걸쳐 암과 싸우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2006년 두번째 암 투병을 이겨낸 뒤에서는 이렇게 썼다.
"지난 3년간 내가 살아온 나날은 어쩌면 기적 인지도 모른다. 힘들어서, 아파서, 너무 짐이 무거워서 어떻게 살가 늘 노심초사했고 고통의ㅏ 나날이 긑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결국으 ㄴ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심히 살며 잘 이겨 냈다. 그리고 이제 그런 내공의 힘으로 더욱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 갈 것이다."
장교수는 장애인의 정당한 권익을 찾기 위해서 실천에 나선 행동가였다.
2001년 미국 하버드대 방문교수 시절, 7층 짜리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고장나 꼭대기 층에 살던 그는 3주동안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장 교수는 이 아파트를 관리하던 보스턴 굴지의 부동산 회사를 상대로 싸워 사과와 함께 보상을 받아냈다.
유력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는 장교수의 스토리를 머리기사로 소개했고, NBC TV와 지역방송들도 앞다퉈 소개해 5,400만 미국 장애인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장교수는 당시 인터뷰에서 "장애인 학생들에게 스스로 일어서라 라고 가르쳐온 내가 적당히 타협할 수 는 없었다"고 말했다.
장영희 교수는 최근까지 에세이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마무리하느라 바빴다. 유작(遺作)이 된 이 책 프롤로그에서 그는 "생각해 보니, 나는 지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기적을 원한다. 암에 걸리면 죽을 확률이 더 크고, 확률에 위배되는 것은 기적이기 때문"이라며 삶에 대한 강한 집념을 적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적"이라며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그는 이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그는 떠났다. 하지만 암과 싸우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들, 장애로 힘들어하는 이들의 마음속에 "장영희"라는 따뜻한 촛불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조선일보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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